배준성화백의 조형의식과 작품세계

2013. 5. 17. 21:39EXIBITION/Current 전시중

배준성의 조형의식과 작품세계

17~18세기 대가들의 작품 들춰보기, 혹은 누드에 옷 입히기

관람자들에게 다양한 시각을 열어 주려는 비권력적 작품들


현대인들은 이미지의 홍수에 위협받으면서도 역설적으로 이미지를 보고, 만들고, 일상적으로 이를 사용하고, 해독하고, 해석한다. 이미지 생산자인 작가들 역시 생산된 다양한 이미지의 영향을 받으며 이를 사용하여 자신의 이미지를 다시 생산한다. 자신이 만들어 낸 이미지의 변별성을 모색하지만 그리 용이한 일은 아니다. 우리 생활에서 일상이 되어 버린 다양한 영상매체가 쏟아내는 동영상 이미지와 사이버 공간의 다양한 이미지에 함몰된 현재의 미술문화 환경에서 작가들이 겪는 환희와 절망은 깊이와 폭에 있어 전대의 그 어느 시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이러한 정황은 예술의 정의와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예술가들에게 심각한 혼돈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배준성은 미술사 전체를 통해 집요하게 천착해 온 그리는 일, 재현, 시각 그리고 이미지의 생산과 소통방식 등과 같은 기본적 명제에서 그 해답을 구하고자 노력한다. ‘그린다’거나 ‘재현’의 문제는 현대미술사에서 이미 오래 전에 폐기처분된 진부한 전통처럼 보인다. 사진의 발명과 추상미술의 전개과정이 이 폐기 가능성을 가속시킨 바 있지만, 배준성은 이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으며 사진과도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배준성의 작업이 가지는 독특함은 바로 이 폐기될 수 없는 전통에 대한 일관된 탐구와 폭넓은 재해석에 있다.

 


 

그의 작품에서 집요하게 나타나고 있는 주요 테마는 'The costume of a Painter' 즉  ‘화가의 옷’이다. 화가의 옷은 두 가지 범주를 갖고 있다. 한 가지는 고전회화의 현대적인 차용을 가리키며 또 한 가지는 배준성이 제작하는 작품에 수여하는 의미체계를 뜻한다. 사진으로 찍은 동시대의 인물을 서양의 고전회화와 만나게 한다. 나체의 사진 모델은 다비드나 앵그르, 싸전트나 알마 타데마와 같은 화가들의 작품 속의 의복을 선사 받으면서 새로운 의미체계로의 여행을 하게 된다.

동서양 미술사에 나타난 대가들의 작품 이미지들을 자신의 작품으로 끌어들여 이들 원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의상들을 투명한 비닐 필름에 아크릴릭 컬러로 모사한다. 의상의 이미지가 모사된 이 비닐 필름들은 원화와 동일한 포즈를 취한 모델들의 사진 위에 부착되어 그가 참조한 원화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이다. 한 시대의 복합적인 문화양상이 총체적으로 녹아있는 의복은 동시대의 한국의 인물과 만나게 됨으로써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경험이 된다.


 

사진과의 합성을 통해 사진과 회화의 문맥을 만나게 함으로써 그리는 행위와 재현 등 서구 미술사의 주요한 관념을 상기시킨다. 특별히 사진사(史) 초기에 귀족들의 전유물로서 ‘초상사진’이 가졌던 의미와 인물화의 결합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화가의 옷' 연작을 통해 모사하고 있는 의상들은 주로 상류사회나 부르주아 계층이 즐겨 입던 화려하고 장식성 강한 벨벳이나 비단과 같이 표면의 매끄러움이 강조된 소재의 의상들이다.


 

 

이러한 매끄러움은 그가 사용하는 비닐의 매끄러운 질감의 상관성을 가지며 모사된다. 그의 모사된 의상들은 사진 화면에 완전히 밀착되지 않으며, 공간감과 거리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나의 층(layer)을 형성한다. 비닐의 일정부분만을 사진에 고정하고 나머지 부분은 늘어뜨리거나 자연스러운 형태로 유지시킨다. 의상의 모사는 일정부분 완성되지 않거나 그리는 과정에 물감이 흐른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도 있고, 미완성된 모사로 인하여 비닐 밑에 놓인 모델의 누드 사진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 화면은 관람자들이 그 의상을 모사한 필름을 들추어 내부의 모델의 누드사진을 볼 수도 있게끔 구조화되어 있기도 하다.

비닐 위에 그려진 옷 때문에 언뜻 모델은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누드이다. 관객들은 호기심에 비닐을 들춰보기도 하며 다시 덮어 회화를 자세히 보기도 한다. 회화 작품이면서도 사진 작품이기도 하고 독특한 층위(layer)를 지녔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을 유발시키는 한편 적극적인 관객의 참여도 유도한다.


 

그의 제작태도에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우선 그는 이미지를 하나의 기호로 사용하여 새로운 매체나 화면의 구성방식을 통해 재 문맥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이미지는 그가 참조한 원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들의 단편으로서 하나의 기호로 작용한다. 그러나 그 단편의 의미들은 새로운 모델이나 배경과 만남으로써 종래의 의미를 상실하거나 의미의 껍질을 유지한 채 다른 의미로 읽히기도 한다. 이러한 태도와 방식은 관람자들에게 다양한 시각을 열어 주려는 좀더 비권력적 시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오늘날 모든 것을 다 보여 주는 이미지와 매체 폭증의 문화현실은 오히려 개인의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예술적 판단을 혼돈시키는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서 작동하기도 하며, 우리로 하여금 방향감각을 상실하게끔 내모는 어떤 거대한 변동의 일각을 형성하기도 한다, 우리는 새로운 매체와 상업주의적 대중문화 논리가 만연하여 진정한 그리기에 대한 탐구가 지속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지점에서 배준성이 보여 온 시각의 현대성이 가진 문제들로부터 출발한 반성적 태도는 매우 중요하며 의미심장하다. 그의 작업은 그리기와 시각, 이미지의 창조와 소통의 문제를 통해 미술의 기본명제를 대상으로 씨름하는 진지한 인식론적 무게를 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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